안녕하세요. 아버지. 어머니.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별일은 없으신가요. 저는 지금 이곳에서 가게를 연 지 벌써 다섯 달이 넘었습니다. 첫 장사라 그런지 정신이 없어 늦게 편지 쓰는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무사히 입점 허가도 받았고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손님도 늘고 있답니다. 덕분에 매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놀라지 마세요. 저에게 애인이 생겼답니다. 너구리지만요.
“너구리지만요.”
“으아아악!! 지금 뭘 보는 거예요!!”
“너 이걸 그대로 쓰면 어떡해!”
사와무라가 기겁하며 미유키의 손에 들린 편지지를 뺏으러 들었다. 하지만 미유키는 몸을 뒤로 빼며 종이를 더욱 위로 뻗었다. 손에 잡힐 듯 했지만 교묘하게 종이를 빼돌리는 미유키가 얄밉다.
“이익. 미유키. 그렇게 나온다 이거죠?”
촤악.
사와무라가 풍선 크기의 물방울을 만들어 미유키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물에 맞은 미유키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아니. 물에 빠진 너구리가 정확했다. 그곳에는 너구리로 변한 미유키가 있었다.
뚝뚝.
털에서 물이 떨어졌다. 미유키가 너구리로 변한 채로 얼어붙어 서 있자 사와무라는 미유키의 발톱에서 종이를 뺏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올려다봤다.
“흥.”
사와무라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큰일 났다.
미유키가 서둘러 두 발로 뒤뚱뒤뚱 거리며 사와무라의 뒤를 따라갔지만, 사와무라는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미유키는 발톱이 되어버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문 앞에 섰다.
“사와무라-. 미안해.”
그러나 문 너머에 있을 사와무라는 잠잠했다. 시간을 확인한 미유키는 불안해하며 문을 두드렸다. 너구리 발바닥으로 두드리기 때문에 쾅쾅이 아닌 탁탁 소리가 났다. 그래도 미동이 없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 출근해야 하는데.”
발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발바닥 특유의 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대로면 출근은 고사하고 바깥으로 못 나간다. 원래의 몸으로 돌아올 때까지 꼼짝없이 이러고 있어야 할 판이다. 사와무라를 놀리지 말걸, 하고 후회가 들었으나 편지 내용이 너무 솔직했다.
순간 물을 뿌린 사와무라가 괘씸해 그도 모른 척 하려고 했으나 출근을 못 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웠다. 사와무라를 만나기 전까지 지각과 결근이 많았던 미유키에게 다음부턴 안 봐준다는 사장의 호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장의 험상궂은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미유키의 안색이 나빠졌다. 정말, 위험했다. 미유키는 발톱을 세우고 문을 긁기 시작했다.
벅벅벅벅벅.
“진짜, 진짜 편지 본거 미안해! 문 좀 열어줘!”
그때 사와무라가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이 열린 반동으로 겨우 두 발로 서 있던 미유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와무라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너구리를 단숨에 안아 올리고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펑-소리와 함께 연기가 샘솟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된 미유키가 나타났다.
당황해서 벌어진 사와무라의 입으로 혀가 침범했다. 속수무책으로 입안을 허용하고 만 사와무라는 혀를 감아올리고 핥는 미유키의 키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절로 목 안에서 나오는 탄식이 나왔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아 미유키의 등을 때리던 손을 그대로 그의 어깨를 감아 안았다.
“으응.”
입 밖으로 신음이 나왔다. 사와무라가 괴로워 바르작거리니 미유키는 한 번 더 입안을 훑고 아쉽다는 듯 아랫입술을 지분거리다 가벼운 버드키스와 함께 떨어졌다.
“하아….”
사와무라가 발개진 얼굴로 달뜬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미유키의 등을 퍽퍽 쳤다. 아프다며 칭얼거려도 미유키의 웃음은 떠나가질 않았다. 미유키는 다시 사와무라의 볼에 짧게 키스를 하고 도망치듯 현관 밖으로 나갔다.